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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족(異民族)의 인신(人神)을 부락집단 신앙의 수호신(守護神)으로 하여 그 신(神)에게 그들의 생활안정을 의탁해 오고 있는 섬마을이 있다.
즉 옛날 제국(齊國)의 전횡(田橫)이라는 장군신(將軍神)을 봉안하고 그 신(神)에게 온갖 정성을 바쳐 그들의 안심입명(安心立命)을 기(期)해 오고 있는보령시오천면 외연도리 주민들에게서 그러한 생활의 일면을 찾아 볼 수 있다.
이처럼 이민족신(異民族神)에게 집단생활의 안정을 의탁해 온 예가 전혀 없지않으나 충남(忠南)지역내에서 흔치 않은 민간 생활의 단면이라 할 수 있다. 외연도(外煙島)는 충남(忠南)의 도서중 내륙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외딴 섬이다.
근(近) 100호 (戶)의 가구에 500여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이곳을 찾는 이들의 눈에 제일 먼저 나타나는 것이 이곳 당산(堂山)의 동백수들로 천연기념물 제136호의 상록수림(常綠樹林)은 이 섬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더욱이 여기 당산(堂山)에는 산신단과 당사(堂舍)가 있어 주민들은 이 숲속 전체를 극히 신성시(神聖視)하여 왔다. 그리하여 6ㆍ25직후 이곳의 민속조사(民俗調査)를 왔던 국립조사단원들 조차 이 숲속에 접근을 못하고 되돌아 갔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그러나 이제는 주민들의 의식도 변해서 10년전 육지의 모인(某서면 정면에 전횡장군신위의 위패가 보이고 그 곁에 전횡이 팔이라 일컫고 있는 소저아씨의 신위(神位)가 보인다.
그리고 좌우로는 당산신위(堂山神位) 도당신위등의 위패가 보인다. 한편 이러한 신위의 면전(面前)을 스친 느림(왼새끼줄)위에는 여인의 저고리와 길지(창호지)가 걸려있고 그 아래에는 코티분을 비롯 나이롱, 머리빗, 거울, 댕기 등이 흩어져 있다.
그리고 당내의 한쪽 구석에는 커다란 두 개의 항아리가 놓여 있고 그속에는 수십점의 여자옷이 차곡차곡 쌓여있다. 원래 이곳의 당제(堂祭)는 4월 11월등 연 3회에 걸쳐 실시 되었으나 5년전부터는 4월제 한번만을 거행해 왔고 이 제를 이곳 주민들은 전횡 장군제(田橫 將軍祭)라 부르고 있다.
제일(祭日)은 4월중 길일(吉日)을 택하여 거행되며 늦어도 제15일전까지는제주(祭主)를 선정해야 한다. 선정된 제주는 그날로부터 몸의 부정을 금해야하며 특히 제물을 만들때는 절대 부정한 일이 있어선는 안된다 하여 해방전까지만해도 제물을 만들 때 소변을 보려면 나무젓가락으로 근(根)을 꺼내 변(便)을 보고 목욕을 해야 하였다 한다.
제의는 제일의 오전에 제주가 당산입구「하밭」이란 곳에서 몽둥이를 곁에놓고 당사를 향하여「미련한 인간들이 잘못하는 일이 많지 잘하는 일이 많겠으리까마는 굽어 살펴 주시옵소서」하는「등장」으로부터 시작된다.
이어 제주는 그 몽둥이를 들고 산신단으로 올라가 그 물로 단을 정결히 닦고 이어 사당으로 내려와 역시 동이의 물로 그곳을 깨끗이 닦아내면 이어 제물이 진설되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초야(初夜)에 산신제를 거행하고 자정이 되면 전횡장군제를 지낸후 다음날 새벽 하산길에 옛날 제물을 훔쳐먹고 즉사했다는 총각 김서방을 위하여 고기 한점, 떡 한쪽, 술 한잔을 부어 놓은 후 곧장 하산하여 부락앞 해변의 방파제끝에와 용왕제(龍王祭)를 거행한다.
용왕제가 끝나면 김밥 세덩이를 바다에 던지는 허식(許食)이 있고 이어 파제에 들어간다. 파제는 온 주민들이 한자리에 모여 온종일 먹고 마시며 춤을 추고 노래하고 농악을 울려대는 즐거운 놀이로서 노소를 불문하고 흥을 돋울 일이면 서슴없이 진행된다.
따라서 이 파제는 주민들의 가장 고대하는 년중행사이다
 

언제부터인가 뱀을 부락의 집단수호신(集團守護神)으로 삼아 그 뱀을 위한제의(祭儀)를 거행할 무렵이면 임산부가 널리 외딴 해막(解幕)으로 피신을 하여야 하는 마을 50여년전 까지만 해도 흔히 볼 수 있다는 해막(解幕) 혹은 해막(産幕)이나 이제는 충남지역내에서는 이곳에서만이 찾아볼 수 있는 특정기간의 출산장소다.
이러한 금기(禁忌)와 정성으로서 거친 바다 생활의 평안을 빌고 품의를 기원해 온 보령시 오천면 삽시도리의 한섬 장고도는 어쩌면 충남의 제주도라 할 만큼 재래의 민속을 보존해 오는 섬마을이라 하겠다.
장고도는 동국흥지승람(東國興地勝覽)등의 문헌에 보면 장고도라 기록되어 있으나 왜정 초에 이동명(里洞名)명칭 기록에서 부터는 장고도(長古島)라 표기하여 왔다.
이곳은 오천항에서 출발하여 원산도를 거쳐 30분쯤 서북방으로 달리면 마치 가로 놓은 장구모양의 길쭉한 섬으로서 아마도 이 섬의 지형에 의해 장고도란 섬의 이름이 지어진 듯 하다.
박씨, 강씨, 편씨가 대부분인 이 섬에는 근70호의 가구에 4백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고 1개 초등학교에 70여명의 아이들을 수용하고 있다.
이 섬마을의 가장 큰 년중행사의 하나는 정초의 당제로서 이 당제를 진대 서낭제라 부르고 있다. 진대란 뱀을 지칭(指稱)하는 경칭어로 충남도내에서 뱀을 주신으로 하는 곳은 그리많지 않으나 그래서인지 이곳에는 파란뱀이 많다고 하여 주민들은 이 뱀을 죽이거나 쫓으려 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주민들은 12간지에 의하면 뱀과 기묵이 (거먹이 돼지)가 상극이라하여 성안에서 돼지를 사육하지 않으며 돈육을 먹으면 탈이난다 하여 외지에 나가도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
이곳의 진대서낭제는 정초 길일을 택하여 거행되며 제주의 선정은 12월 중간 경대동계에서 실시된다. 제주가 될 수있는 사람은 상주가 아닌 사람 두해동안 사소한 불상사도 없었던 사람, 가내에 임신한 여인이 없는 사람, 제가 끝날 때 까지 집안에 월경할 여인이 없는 사람, 제일에 생기복덕(生氣福德)이라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러한 조건에 합당하여 제주로 선정된 사람은 그날로부터 목욕을 하고 새옷을 갈아 입고 문전에 황토를 깔고 금줄을 쳐 잡인의 래입(來入)을 막으며 범방(犯房)을 금(禁)하고 부정한 것을 보지도 먹지도 말아야 하는 등의 각종 금기를 준수해야 한다.
그리고 제주의 이러한 금기(禁忌)의 일부는 제가 끝난 뒤 즉 다음 제주가 선정 될 때 까지 1년간 지켜져야 한다. 한편 부락의 부녀자들중 제주가 선정된 날로부터 제의가 끝나기 전에 출산할 기미가 있는 임부는 미리 해막으로 피신을 하여 그곳에서 출산을 하고 제의가 끝난다음 귀가 하여야 한다.
충남도내에서 아직도 해막이 남아 있는 곳은 이 장고도 뿐으로 이곳의 해막은 원래 섬의 동북단「대머리」란 곳에 위치하고 있었으나 근 년 정부의 독립가옥집단이주 시책에 따라 1973년 7월 현재의 위치인 부락 서남측 장고 초등학교 곁에 다시 건립하였다. 당산이 보이지 않는 이곳에 위치한 해막은 약 3평정도의 분족 벽에 스레이트 지붕을 얹었으며 2개의 방과 1개의 부엌이 있다.
한편 제(祭) 3일전 부터는 일반인의 동정(洞井) 사용이 금지되고 다만 제주만이 사용할 수 있으며 제일이 되면 각가(各家)의 부녀자들은 머리를 감고 새옷으로 갈아 입은 뒤 정결한 마음으로 제의(祭儀)가 거행될 시각을 기다린다.
제주는 제일 오전 9시쯤 제주를 비롯한 집사자(執事者)들의 상당(上堂)에 입당하여 대기하고 있다가 정오가 되면 입제(入祭)에 들어간다.
제를 마친 일행은 오후 3시쯤 하산하다가 도중의 하당에서 다시 제를 거행하게 되는바 이때 배를 소유하고 있는 선주(船主)들은 선체내에 배가 없는 사람들은 집안의 장독대에 시루 청수(淸水)와 촛불을 켜놓고 지성을 다한다.
이를「당맞이」라 하며 하당에서의 제가 끝나면 제주 일행이 제주택으로 직행하여 간단한 음복(飮福)을 하게 된다.
이러한 제의를 마친 다음날을 「후렴날」이라하여 이날은 온주민이 모두 모여 제물을 나누어 먹으며 하루를 즐기고 부락총회에 들어가 부락의 대소사(大小事)를 논의하게 된다.

 

요왕제란용왕제(龍王祭)를 말한다. 어촌에서는 흔히 용왕(龍王)을요왕, 유왕, 유황으로 칭하기 때문에 용왕제를 요왕제, 유왕제, 유황제라 부르고 있다.
이 요왕제는 항해의 안전을 용왕께 의탁하는 일종의 개인신앙이며 부녀자들에 의해 거행되는 의식으로서 장고도의 요왕제는 다른 어떤 어촌의 의식보다도 순수하고 정결하다.
음력 2월의 첫 번째 진일(용날)이 되면 부정이 없는 부인이 정성껏 목욕을 한 후 새옷을 갈아 입고 시루떡 밥, 과일, 나물등 제물을 준비한다. 준비가 끝나면 부인은 만조(滿潮)를 기다려 그 제물을 정결한 해변으로 나가 그곳에 짚이나 흰종이를 깔고 그 위에 제물을 진설(陳設)한 다음 동서남북 사방을 향하여 각각 재배를하고 용왕국을 향하여 요왕할머니를 수없이 부르며 계속 절을 한다.
그리고 나서 마음속으로 용왕이 나타났다는 생각이 들면 그 용왕을 향하여 「죽은 나무 가로타고 다니면서 무사하게 하여 주시기를 빕니다」라는 고사(告辭)를 반복하여 수없는 절이 끝나면 진설했던 제물을 섞어 백지에 세뭉치를 만들어 싼다. 익사자의 수에 따라 뭉치를 증가시켜 싸기도 한다.
제물 뭉치를 던지면서「진더이 받아 주셔서 고맙고 고맙습니다 」를 반복하게 되고 이 제물을 섞어 만든 뭉치를 「요왕짐」이라 한다.
그때 요왕짐이 가라 않아야만 요왕의 음(陰)우를 얻을 수 있다고 믿어 부인은 요왕짐이 가라앉기를 기구하게 된다. 반면 요왕짐이 물위에 뜨게 되면 용왕의 음우를 받을 수 없고 불길하다 하여 부인은 다시 목욕하고 재차 요왕제를 거행하여야 하며 그래도 물위에 뜰 경우엔 제일을 연기하여 요왕제를 지내게 된다.
즉 2월에 첫 진일이 두 번이나 요왕짐을 받지 않을 경우엔 3월의 첫 진일 만조시에 역시 같은 방법으로 요왕제를 거행하여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부인들은 새해가 시작되는 날로부터 요왕제가 무사히 끝날 때 까지 늘 요왕짐을 잘 받아 주기를 기원하게 되고 이 의식이끝나면 마지막 절차로서 제물을 한데 뒤섞어 여기저기 해변에 골고루 던지는 의식으로서 요왕제는 끝나게 된다.

 

원산도내(元山島內)에는 여덟곳의 크고 작은 마을들이 있는데 이곳 주민들의 외형적인 생활형태는 동일하지만 집단신앙의 내면은 마을마다 서로 다르다.
각각의 마을에서는 서로 다른 당산에 서로 다른 당신(堂神)을 모시고 서로 다른 형태와 내용의 집단제의를 거행하여 오고 있다. 그리하여 이곳 주민들의 신앙대상을 보면 고양할머니 호랑이 말신 각씨신 지황신등 매우 같은 당제라 하더라도 제일이 일정치 않고 제의 방법이 서로 다르다.
이러한 제의(祭儀)를 보통은「망제」라 하지만 곳에 따라서「당제 모신다」「진고개」「지지황제」「사창」이라 부르기도 한다. 제의는 일반적으로 당산에 위치한 「당집」에서 거행하지만 마을에 따라서는 당산에 의막(차일)을 설(設)하고 그 곳에서 제를 거행하는 곳도 있고 굳이 우물가에서 거행하는 마을(사창)도 있다.
이러한 원산도내의 묘우(당집)중 대표적인 것으로서는 선촌의 묘우화 진촌의 묘우를 들 수 있다.
먼저 선촌의 당을 보면 당산 중턱의 소나무 숲속에 위치한 2평정도의 목조와가(瓦家)로서 (당, 당집, 각씨방, 사당)이라 부르고 있는 이 당집은 한쪽이 거의 쓰러져 가고 있는 고가로 짙은 고풍을 풍겨주고 있다.
이당집 용마루의 동측 귀면와에는 (강희(康熙) 13년갑인 9월보령(九月保寧)) 이란 문양이 새겨져 있어 지금부터 삼백년전 청나라 강희 13년 즉 1674년에 보령에서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진촌(鎭村)의 당집은 당산 정사의 시멘트 벽에 기와로 덮인 1평 정도의 묘우로서「萬寧堂」이란 현판이 걸려 있다. 이 현판의 좌측벽 윗부분에는「원산신당중수기(元山神堂重修記)」라 새겨진 액판(額板)이 걸려 있는데 여기에 보면 「역인간(歷人間)을 보호하는 것은 영(靈)이요 그 영이 거(居)하는 곳은 당(堂)이니 이 역을 물리쳐 주기를 기원한다」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
그리고 이 액판(額板)의 말미에「숭정四丙年六月」이란 구(句)가 보이는데 이는 곳 1846(헌종(憲宗)12 도광(道光)26) 병오년으로 이때 중수(重修)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선촌인 사당이나 진촌의 만령당은 원산도내의 대표적인 집단 제전처(祭典處)로서 짙은 고풍을 풍겨주고 있다.
그리고 마을마다 거행하고 있는 당제의 대상신(對象神)을 보면 마을마다 독특한 신을 모시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선촌(船村)에서는 그들의 당신(堂神)을 「산신, 당산할머니, 혹은 각시신」이라 지칭하고 있는데 이것은 주민들의 대상신이 산신이며 그 신은 여신임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진촌의 경우는 마(馬)를 대상신으로 하고 있으며 초전에서는「고양 할머니」「수신」「지황신」「산신」「호」등을 그들의 수호신으로 받들어 모시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들 신은 대부분 여성신으로 신당에 여자의 옷이나 화장품을 바치고 있다. 따라서 신을 표시하는 신체(神疜)도 마을에 따라 다르다.
초전의 예를 들면 초전의 당집에는 진흙을 빚어 만든 고양이 상을 모시고「고양이할머니」라 부르는데 이 고양이는 뒷다리중 한쪽 다리가 없어진 것으로 고양이의 뒷다리가 없어진 이유를「마을에 호랑이가 침범했을 때 고양이가 쫓아 내다가 한쪽 다리를 잃었다」는 말이 전해 오고 있다.
이는 주민들이 자기들이 받드는 고양이를 초자연적인 것으로 인식하고자 하는 의도가 숨어 있다. 한편 진촌의 당신은 말로서「말서낭」이라 하고 땅내의 신주로 철제 마상을 안치해 두었으나 모두 도난 당하고 지금은 사제인지 도제인지 알 수 없는 각종 동물상11점(動物相十一點)이 당사내 선반위에 놓여있다.
이러한 동물상은 매년 당제를 거행할 때마다 한개씩 만들어 바친 것으로 되어 있다. 이 제전에 동물상을 바친 이유는 생폐례세의 일종으로 제시(祭時)마다 신을 위하여 생폐로서 동물을 한마리씩 바쳐야 하는데 매년 그럴수가 없기 때문에 산 동물 대신 흙으로 동물을 만들어 바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이러한 동물상은 산동물을 대신하는 모조동물일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제물이 다르고 그 제의 대상신이 서로 다른 원산도의 각 마을에서는 그 제의(祭儀)의 일자 또한 각기 다르다.
그러나 당제는 정초에서 중순경에 택하여져 행해지고 있으며 제주를 선정된 날로부터 부정이 있을 경우 다음날로 연기된다. 제주는 부락의 성인남자중 각종의 부정이 없는 사람을 선정 결정하는데 보통 제10~15일전에 대동계에서 구두 호천으로 결정한다.
제주는 선정날부터 대문에 금줄을 늘이고 문전에 황토를 펴 잡인과 부정의 래입(來入)을 금하여 자신도 정결한 몸과 마음을 갖고 금기사항을 지키는데 대부분 제가 끝나면 금기도 해제되나 곳에 따라 1년동안 지켜지기도 한다.
한편 주민들도 부정을 금하고 몸과 마음을 정결하고 집안팎을 깨끗이 한다. 특히 제기간 동안에 산고(産故)가 예상되는 부녀자는 타부락으로 피신하여 제가 끝난 뒤에 돌아 오는데 진촌의 경우엔「액막이랑」이 있어 그곳으로 피신하였다.
제의(祭儀)는 보통 곳에 따라 2차당제를 거행하기도 한다. 제물은 매, 탕, 시주, 조라, 포, 과일등을 비롯해서 우(牛) 1두나 돈 1두를 진설하는데 이때의 경비는 대동계에서 충당하거나 아니면 각호에서 추렴하여 충당한다.
제의의 절차는 극히 간소화 하였으나 선촌의 예를 들면 대단히 거창하다. 먼저 당산에서 1차 제의를 거행하고 당산 기슭에서 마을굿을 거행한다. 이굿은 내륙으로부터 초치(招致)된 10여명의 단골 무당과 광대들에 의해 하룻밤 이틀낮 동안 무당의 열두거리굿을 비롯하여 광대들의 각종 기예가 계속되었다.
그러나 현재는 대부분이 마을에서 제주와 부정이 없는 몇사람이 제당에 올라 간단한 제를 올리고 하산하여 제주실에 모여 마을사람들과 음복(飮福)을 하고 허식(許食)을 하는 과제에 들어가게 된다.
그런데 거짐같은 마을에서는 제 다음날을「후렛날」「후령날」이라 하여 이날 하루를 전주민이 모여 먹고 마시며 즐기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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